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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오늘날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오랫동안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며 강대국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 편에 섰다가 그만 국운이 쇠락했다. 독일과 나란히 패전국의 짐을 짊어진 튀르키예는 유럽 쪽 영토를 거의 다 잃었다. 해체된 옛 제국을 대신해 1923년에는 공화국이 들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뒤 영국, 미국 등 연합국들은 튀르키예를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우는 전선으로 끌어들이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나 1차대전 시기 서방과 대립했던 튀르키예는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대세를 관망하며 중립 노선을 고수하다가 독일 패배가 확실해진 뒤에야 연합국에 가담했다.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나토 정상회의가 개막한 7일(현지시간) 공항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직접 마중을 나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환영을 받으며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트럼프는 튀르키예를 “훌륭한 동맹”이라고 칭찬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차대전 종전 후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이 튀르키예 안보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했다. 지금은 튀르키예와 러시아 사이에 조지아, 아르메니아 같은 나라들이 있지만 소련 해체 이전에는 달랐다. 조지아·아르메니아 둘 다 옛 소련의 일부로 냉전 시기만 해도 튀르키예와 소련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튀르키예는 이웃 나라 그리스와 더불어 공산주의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컸다. 양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영국은 1947년 “국력의 한계”를 들어 지원 포기를 선언했다. 영국이 했던 역할은 서방의 신흥 패권국 미국에게 넘어갔다. 역사가들은 1947년 3월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그리스·튀르키예 원조 방침을 밝히며 ‘트루먼 선언’을 발표한 것을 동서 냉점의 시발점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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