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026 선거 잔혹사, ‘대한민국판 선거 명예혁명’으로 구원하라
2026년 6월 3일 치러진 지방선거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치명적인 상흔을 남겼다. 일부 투표소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행정적 과실이나 기술적 오류가 아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가장 신성한 권리인 참정권을 국가 시스템이 스스로 침해한 본질적인 민주주의의 위기다. 지금 광장과 대학가에는 기성 정치권의 정파적 셈법과 무능을 매섭게 질타하며 ‘전면 재선거’를 요구하는 2030 젊은 세대의 실명 대자보와 시국 선언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 초유의 사태를 마주하며 우리는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인식론적 단절’과 르네 톰(René Thom)의 ‘파국 이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청년 세대가 보여주는 분노와 행동은 과거의 관습과 타협을 단호히 거부하는 전형적인 ‘인식론적 단절’의 발현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기성 정치권의 문법, 즉 “행정적 실수이니 사후 소송 결과를 기다리자”거나 “진보와 보수의 정파적 이익에 맞춰 수습하자”는 태도를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인식론적 장애’로 규정했다. 젊은 세대는 이념의 연속성을 끊어내고, ‘절차적 공정성’과 ‘주권재민’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향해 스스로 광장에 걸어 나왔다. 수동적인 표 밭으로 취급받던 대중이 역사를 바꾸는 ‘능동적 주체’로 대전환한 순간이다.
반면, 청년들이 요구하는 ‘전면 재선거’라는 극단적 처방은 파국 이론의 메커니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동안 청년층 내부에 누적되어 온 소득 양극화, 고용 불안,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라는 미세한 제어 변수들이 이번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결정적 사건을 만나 임계점(Critical Point)을 돌파한 것이다. 시스템이 이 임계점을 무시하고 연속성을 고집하려 든다면, 대중의 분노는 통제 불능의 파괴적 파국(Catastrophe), 즉 폭동이나 체제 마비라는 극단적인 형태 변화로 튕겨 나갈 수밖에 없다. 시민의 정당한 요구를 기성 정치권이 거부할 때 맞이할 결말은 언제나 통제력을 상실한 권력의 자멸이었다.
현행 대한민국 공직선거법과 헌법의 재선거 규정은 이 정도 규모의 광범위한 참정권 박탈 사태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설계된 불완전한 법조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가 침묵한다면 국민은 법이 만들어 놓은 경직된 틀 안에 갇힌 ‘수동적 객체’로 전락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조문의 자구에 매몰된 소극적 해석을 넘어서는 ‘인식론적 도약’이다. 법 이전에 존재하는 주권자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정치권이 결단해야 한다.
만약 여야 정치권이 자신들의 정파적 이해득실을 과감히 내려놓고 청년들의 요구를 전격 수용하여 ‘전면 재선거’라는 대타협을 이뤄낸다면, 이는 정확히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에 버금가는 역사적 쾌거가 될 것이다. 명예혁명은 피를 흘리는 혼란 대신 의회라는 제도적 결단을 통해 체제의 총체적 붕괴를 막고 입헌군주제라는 새로운 위상(Topology)으로 도약한 사건이었다.
우리가 이룩해야 할 ‘대한민국판 선거 명예혁명’도 마찬가지다. 광장의 폭발적인 분노와 에너지를 ‘투표소’라는 가장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제도 공간 안으로 흡수하여 시스템을 리부팅해야 한다. 화염병과 물리적 충돌이 동원된 폭력적 혁명이 아니라, 오직 헌법적 가치와 공정성만을 내세워 지배 엘리트의 항복을 받아내는 영리한 세대 혁명이어야 한다.이 대타협이 성취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치명적인 시스템 오류를 스스로의 민주적 합의로 치유할 수 있는 강력한 복원력(Resilience)을 증명하게 된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민주주의의 규칙을 바로잡았다는 거대한 효능감을 얻으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가장 성숙하고 능동적인 주권자로 우뚝 설 것이다.
법조문이라는 과거의 족쇄를 끊어내고(단절), 민주주의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파국적 도약) 위대한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 정치권은 광장의 목소리를 엄중히 받들어 전면 재선거를 결단하라. 폭력이 아닌 법과 절차를 통해 정의를 바로 세우는 명예로운 선거 혁명만이, 지금의 갈등을 치유하고 새로운 위상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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