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대학들이 문을 닫고,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던 공단들이 활력을 잃어간다.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는 이제 머나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라, 당장 눈앞에 들이닥친 현실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으며 혁신도시를 짓고 인구 유입 대책을 발표하지만, 청년들의 ‘인서울’ 행렬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거대 광역시들조차 청년 유출을 막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며, 기성세대는 흔히 혀를 찬다. “요즘 애들은 서울의 화려한 문화만 쫓는다”거나 “지방에서는 고생하기 싫어한다”는 식의 철없는 허영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제3자의 시선에서 냉정하게 짚어보자면, 청년들의 서울행은 문화적 갈증을 채우려는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격차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 투쟁’이다.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양질의 일자리’의 절대적 부족이다.
흔히 지방에도 일자리는 많다고 말하지만, 청년들이 원하는, 그리고 이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IT, 금융, 엔터테인먼트, 스타트업 등 신산업 기반의 고부가가치 일자리는 9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지방에 남은 자리는 대개 고령화된 전통 제조업이나 단순 서비스직, 혹은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더 넓은 세상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은 청년들에게 지방에 남으라는 요구는, 시작부터 커리어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저앉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첫 직장의 선택이 평생의 자산 격차를 결정짓는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인서울은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코스가 된 것이다.
더 뼈아픈 현상은 ‘인프라의 양극화’가 만드는 삶의 질 격차다.
단순히 백화점이나 영화관의 개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의료, 교육, 대중교통, 그리고 ‘다양한 인간관계의 기회’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까지 모두 서울이 독점하고 있다. 지방에서는 밤늦은 시간 버스 한 대를 타기 위해 수십 분을 기다려야 하고, 큰 병이라도 걸리면 서울 대형병원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인적 인프라의 격차까지 더해진다. 비슷한 가치관과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또래 집단이 죄다 서울로 빠져나가면서, 지방에 남은 청년들은 고립감과 싸워야 한다. 기회가 독점된 사회에서 지방에 산다는 것은 곧 ‘ 정보와 기회의 격리’를 의미하기에, 청년들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전세 사기의 위험과 살인적인 월세를 감당하면서도 수도권이라는 링 위로 올라설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동안 건물 몇 개를 짓고 공공기관 몇 군데를 이전하면 지방이 살아날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알맹이 없는 하드웨어 중심의 정책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번지르르한 청사 건물이 아니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다. 본질적인 고용 구조의 혁신과 삶의 질을 보장하는 인프라의 균등 분배가 선행되지 않는 한, 지방 살리기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청년들은 결코 서울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고향을 버린 것이 아니다. 지방에 머물러서는 도저히 미래를 그릴 수 없게 만든 사회적 구조가 그들을 인서울행 열차로 떠민 것이다. 이 거대한 생존의 방향성을 바꾸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머리만 비대해지고 사지는 마비되어 가는 기형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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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수도권 집중이 결국 핵심이네요.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가 없으니 떠날 수밖에 없는 건데 청년 탓으로 돌리는 게 늘 답답했습니다. 잘 읽었어요.
저도 지방 출신이라 더 와닿네요ㅠ 결국 일자리 따라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생존 투쟁'이라는 표현이 진짜 딱이에요.
인프라 양극화 부분 너무 공감합니다. 큰 병 생기면 서울 병원까지 상경해야 하는 게 현실이죠. 사는 질 자체가 다른데 어떻게 남으라고...
허영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한 줄에 무릎을 칩니다. 막연히 느끼던 걸 정확하게 짚어주셨네요.
균형발전 한다고 건물만 올리지 말고 진짜 사람이 일할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매번 예산 쏟는다는 발표만 반복되는 느낌이라 더 와닿았습니다.
지방에 남은 청년들의 고립감 얘기는 잘 안 다뤄지는데 짚어주셔서 좋았어요. 또래가 다 빠져나간 동네에 남는 막막함, 겪어본 사람만 알죠. 공감하며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