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이라는 ‘위험 투자’ — 2030이 낭만을 가성비로 치환한 이유

주제로인증 필진

2026.06.17 · 조회 1

정부 발표나 언론 보도에서 저출생과 비혼 문제를 다룰 때 단골로 등장하는 수식어가 있다. "이기적인 세대", 혹은 "가족의 가치를 잃어버린 개인주의 세대"라는 비판이다. 청년들이 자기 한 몸 편하자고 인류의 오랜 전통이자 신성한 가치인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다는 잔소리다. 하지만 제3자의 눈으로 청년들의 현실을 차분히 뜯어보면 이 진단은 지독한 난센스다. 2030 세대가 낭만을 버린 것은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다. 도저히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동시킨, 철저한 ‘리스크 관리’의 결과다.

과거 기성세대의 시대에는 연애와 결혼이 삶의 자연스러운 기본값(Default)이었다.
단칸방에서 시작하더라도 성실히 일하면 집 한 채 마련하고 자식을 키워낼 수 있다는 사회적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결혼은 미래에 대한 공동 투자였다. 반면 지금의 2030 세대가 마주한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내 몸 하나 누일 전셋집 마련조차 평생의 빚을 짊어져야 하는 살인적인 주거 비용, 그리고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고용 불안정 속에서 타인의 삶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 인생을 건 '초고위험 도박'에 가깝다.

이 냉혹한 구조 속에서 2030 세대는 생존을 위해 감정과 관계마저 ‘비용 대비 편익’이라는 가성비 공식으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만나 감정을 쓰고, 시간을 투자하고,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다가오는 것이다. 내 삶의 안전망조차 무너진 상황에서 가정을 꾸렸다가 실패했을 때, 사회는 그 어떤 구제책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청년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국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비혼 사회의 도래는, 청년들의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위험 요소를 본능적으로 회피하려는 지극히 정상적인 방어기제다.

청년 세대의 이 차가운 계산기를 탓하기 전에,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지독한 가성비의 노예로 만들었는지 본질을 봐야 한다. 패배하면 삶이 통째로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극단적인 양극화 사회, 실패한 이들을 품어주지 않는 부실한 사회적 안전망이 범인이다. 삶의 기초 체력이 부실한 사회에서 "그래도 사랑하니까 결혼하라"는 조언은 낭만이 아니라 폭력에 가깝다. 청년들은 결혼 제도의 가치를 몰라서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제도를 감당할 최소한의 자원과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회 구조에 냉소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저출생과 비혼 문제는 청년들에게 훈계를 늘어놓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결혼과 출산이 내 인생을 파멸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구조적 공포를 지워내지 않는 한, 그 어떤 파격적인 현금성 지원 정책도 공허한 미봉책에 그칠 것이다. 기성세대와 정치가 진정으로 위기를 해결하고 싶다면 청년들의 이기심을 꾸짖을 게 아니라, 이들이 두드리고 있는 계산기를 치워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부터 구축해야 한다.

삶이 투자가 아닌 일상이 될 때, 비로소 청년들은 닫아걸었던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낭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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