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올인을 걷어치워라

조전혁인증 필진

2026.06.29 · 조회 14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쓴맛을 봤다. 지고 있는데 공격수를 빼고 수비수를 넣었다. 열 살 초등학생도 “차라리 감독 없이 가는 게 낫겠다”고 했다. 복잡한 전술 이전에 상식의 문제였다는 뜻이다. 상식이 사라진 벤치는 결국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런데 이 장면이 축구장에서만 벌어지는 것 같지 않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인 반도체 전선에서도 똑같은 기시감이 어른거린다. 시장이 판단해야 할 기업 투자를 권력이 ‘행정지도’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인다. 정치가 전술판을 들고 기업의 라커룸까지 들어온 꼴이다.

반도체는 구호로 짓는 공장이 아니다. 지역균형이라는 훈장으로 웨이퍼가 깎이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의 필수 조건은 냉정하다. 전기, 물, 인재다. 이 셋이 없으면 800조가 아니라 8000조를 쏟아부어도 모래 위의 성이다.

호남 반도체론의 가장 큰 허점도 여기에 있다. 전기는 충분한가. 초미세 공정을 돌릴 만큼 안정적인 전력 품질을 확보했는가. 물은 어떤가. 하루 수십만 톤의 공업용수와 초순수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 인재는 또 어떤가. 세계 최고 수준의 석·박사급 인력과 협력업체 생태계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가.

답은 궁색하다. 전기는 불안하고, 물은 빠듯하며, 인재 생태계는 얇다. 그럼에도 “호남이 최적지”라며 정치적 깃발부터 꽂는다. 골이 필요한데 수비수를 넣는 축구보다 더 난해하다. 적어도 축구 전술 실패는 한 대회로 끝난다. 반도체 전술 실패는 국가 산업의 뿌리를 흔든다.

기업 투자는 충성 경쟁이 아니다.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리는 눈치 게임도 아니다. 기업은 표가 아니라 수익성으로 움직인다. 시장은 연설문을 읽지 않고, 공장은 구호에 반응하지 않는다. 전력망, 용수, 인재, 물류, 공급망, 고객 접근성이라는 냉혹한 조건만 따질 뿐이다.

그런데도 권력이 “행정지도”라는 말로 기업의 팔을 비틀고, 이를 “결단”이라 포장한다면 그것은 시장경제가 아니라 관치경제다. 이름만 부드럽게 바꾼다고 강요가 설득이 되지는 않는다. 칼집에 꽃을 꽂는다고 칼이 꽃다발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월드컵은 이미 한 가지를 가르쳐줬다. 상식을 모르는 지휘자는 팀을 망친다. 경제도 다르지 않다. 초등생도 아는 상식을 대통령만 모른다면, 그 대가는 축구장의 야유보다 훨씬 크고 길 것이다.

반도체는 정치의 이벤트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생존 산업이다. 시장을 이기겠다는 권력은 결국 시장 앞에서 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호남 올인이 아니라 상식 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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