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청 발표나 뉴스 기사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통계가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고 답한 2030 청년이 수십만 명에 달한다는 소식이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고, 기성세대는 “요즘 애들은 눈이 높아서 큰일”이라며 혀를 찬다. 배가 불러서, 혹은 끈기가 없어서 편한 길만 찾으려 한다는 잔소리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현장의 입장에서 보면 이 진단은 완전히 거꾸로 됐다. 2030 세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밀어내는, 일종의 ‘무언의 파업’이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2030 세대는 단군 이래 가장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았고, 대학에 와서도 낭만 대신 학점 관리와 토익 점수, 대외활동과 인턴 경력까지 영혼을 갈아 넣으며 스펙을 쌓았다. 기성세대가 말한 “열심히 노력하면 보상받을 것”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철저히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의 고용 시장은 냉혹하기 짝이 없었다. 청년들이 갈 만한 양질의 일자리는 극소수인데, 그 좁은 문을 뚫지 못해 눈을 낮추면 기다리는 것은 생활비와 방세조차 감당하기 힘든 저임금 격무뿐이다.
이들은 대기업 명함을 달고 싶어서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가 메워질 수 없을 만큼 벌어진 사회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평생 자산 형성이 불가능하다는 구조적 공포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한 달에 200만 원 남짓 받으며 온갖 감정 노동과 야근에 시달려 봐야, 몇 년 치 연봉을 우습게 추월하는 집값 앞에서는 저축 자체가 미련한 짓이 된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해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면, 이 노동의 ‘가성비’는 완전히 마이너스다. 노력 투입 대비 아웃풋이 전혀 안 나오는 게임에 내 청춘과 에너지를 더는 베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결국 지금 청년들의 ‘쉬었음’은 자발적 무기력이 아니라, 지독한 ‘비용-편익 계산’ 끝에 나온 합리적인 방어기제다. 열심히 달려봐야 벼랑 끝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방식은 멈춰 서는 것뿐이다. 눈을 낮추어 적당한 일자리에 들어갔다가 몸과 정신이 먼저 망가지는 리스크를 감수하느니, 차라리 구직을 단념하고 숨을 고르며 에너지를 온존하는 편이 낫다는 계산이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이것이 ‘낙오’나 ‘포기’로 보이겠지만, 2030 세대에게는 부조리한 노동 구조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조용한 저항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청년들에게 눈을 낮추라고, 더 노력하라고 채찍질한다. 하지만 진짜 고쳐야 할 것은 청년들의 눈높이가 아니라, 노력의 대가를 온전히 돌려주지 못하는 일터의 환경과 저성장 사회의 분배 구조다. 언제까지 청년 개인의 패기와 정신력만 탓할 것인가. 노력의 가성비가 제로가 된 사회에서 멈춰 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꼰대 같은 훈계가 아니다. 노력이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과, 일한 만큼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상식의 복원이다. 그 규칙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2030 세대의 이 조용한 파업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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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와 이거 거의 내 얘기네... 눈 낮춰서 들어갔다가 몸만 축나고 나온 적 있어서 더 와닿음. 가성비 안 나오는 게임이라는 표현이 진짜 정확함.
직접 겪으신 이야기라 훨씬 무겁게 다가옵니다.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는데도 ‘그래도 버텨라’만 반복하는 게 지금의 구조죠.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자기 보호였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무언의 파업'이라는 프레임이 신선하네요. 게으름이 아니라 합리적 계산이라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구조인데 자꾸 개인 탓으로만 돌리는 게 답답하죠.
정확히 짚어주셨습니다. 개인 탓으로 환원하는 순간 정작 구조를 들여다볼 동력이 사라지죠. ‘프레임 자체를 바꿔보자’는 게 이 글의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공감되는 부분 많은데, 그래도 전부 구조 탓으로만 돌리기엔 개인차도 좀 있지 않나 싶긴 함. 물론 구조가 더 큰 문제인 건 분명하고요.
좋은 지적입니다. 개인차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수십만 명 규모의 ‘쉬었음’은 개인 기질의 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기에, 공통된 구조를 먼저 봐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 위에서 개인차를 논하는 게 순서라고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럼 결국 핵심은 중소-대기업 격차를 줄이는 거라는 말씀이신지 궁금하네요.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핵심을 잘 읽으셨습니다. 격차 축소가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의 노동조건과 임금 하한을 끌어올리고, 첫 직장이 평생 자산격차로 굳어지지 않도록 주거·사회안전망이 받쳐줘야 하죠. 단번에 되진 않더라도 방향은 거기여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 문단 진짜 공감합니다. 고쳐야 할 건 청년이 아니라 구조인데.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그 한 문장을 말하려고 글 전체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